진공증착과 열역학
뭔가 뜬금없지만, 이번에는 진공증착과 열역학과의 아주 간단한 관계를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제가 진공증착 전문은 아니라서 자료를 그닥 많이 본게 아닙니다만, 여기저기 진공증착을 설명해 놓은 기존 자료들에서 열역학적 상태도와 연관을 지어놓은 것은 어째 못본것 같습니다. 물론 굳이 설명할 필요를 못느껴서 그랬을테지만.. 그래도 이곳은 그냥 블로그니까 여기서 한번 끄집어 내는것도 나쁘진 않을거 같습니다.
재료와 관계된 열역학을 하다보면 언제든 상태도(Phase Diagram)라는 것을 접하게 됩니다. 상태도는 어떠한 물질이 온도, 압력, 성분 등에 따른 상(phase)의 상태 변화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인데, 물질은 열역학적으로 안정화 되고 에너지를 낮추기 위해 주어진 환경에 알맞는 상의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재료나 소재를 다루는 입장에서 상태도는 정말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1성분계에서는 H2O 의 상태도, 2성분계 이상에서는 Fe-C 의 상태도를 기본으로 알고있으면 어지간한 물질의 상태도를 보고 물질의 상태, 에너지와의 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공증착(evaporation)은 이제는 모두 아시겠지만 챔버내를 진공으로 만든 뒤 원하는 시료(물질)을 가열하여 기체상태로 만들고 그것을 기판에 증착시켜 박막으로 다시 고체화 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상당수는 이런 의문을 가졌을 겁니다.
'금속 고체물질을 가열하면 액체가 되고 그걸 끓여야 기체가 되는데, 그러면 진공챔버 내에서 금속을 녹여서 끓이는 건가?'
물론 아닙니다. 진공증착에서 고체시료는 바로 기체로 변화하게 됩니다. 원하면 끓일수도 있습니다만...
H2O의 대충그린 1성분계 상태도
H2O는 고상과 액상간 선의 기울기가 음(-)으로 된 대단히 특이한 물질이다.
같은 특성을 가진것으로 비스무트(Bi)와 안티몬(Sb)이 있다.
위 그림은 H2O 의 상태도 입니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이걸 기준으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상태도의 y 축은 압력, x 축은 온도이며, 온도와 압력에 따라 고상(Ice), 액상(Water), 기상(Vapor)의 3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T 인 부분은 삼중점(triple point) 이라고 부르는 3가지 물질상태가 동시에 공존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현재 1atm 하에 있기 때문에 여기를 기준으로 잡아봅시다. A 라고 표기된 녹색의 화살표를 보면 압력 1atm에서 온도 0℃ 이하에서는 고상인 얼음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0℃ 이상에서 액상으로 변화하고 100℃가 되면 기상으로 변화하는것을 알 수 있죠. 이게 일반적인 온도 증가에 따른 물질의 상태변화 입니다. 물이 아니라 금속이라도 마찬가지죠. H2O 와는 온도가 크게 다르겠지만 금속이 녹는점(melting point)이 되면 액상으로 변화할 것이고, 끓는점(boiling point)에서 기상으로 변화하는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액상의 H2O인 물은 100℃의 온도가 되지 않더라도 상온에서도 '증발'은 일어납니다만, 상태도가 의미하는 것은 특정한 온도와 압력 조건에서 에너지적으로 안정한 물질의 상태는 무엇인지, 그리고 물질들 간의 평형상태는 어디인지를 나타내는것임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B 의 화살표를 봅시다. 압력은 3중점 아래로 한참 낮아있습니다. 3중점의 압력이 0.006atm 인데요, torr로 환산하면 4.56torr 정도 됩니다. 그것보다 아래로 압력을 낮추게 되면 뭔가 큰 변화가 있습니다. 1atm 에서는 0℃에서 고상이 액상으로 변화하고 100℃ 까지 또 온도를 올려야만 기상으로 변화했는데, B 라는 압력에서는, 그것도 0℃ 보다 한참 아래의 영하의 온도에서 고상인 얼음이 바로 기상으로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압력만 낮추었을 뿐인데, 온도까지 자동으로 변했습니다.
Mg의 역시 대충그린 1성분계 상태도
고상과 액상의 경계선의 기울기가 H2O 와는 반대라는것
우리가 H2O 를 증착할건 아니니까, 금속인 마그네슘(Mg)를 예로 바꿔서 살펴볼까요. 사실 금속인 Mg 표면에서 Mg 원자를 기체 상태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변수를 온도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열증착(thermal evaporation)을 한다고 해봅시다. Mg의 1성분계 상태도에서 A 라고 표기된 화살표를 따라가면 1atm 에서 고상이 액상으로 변하는 녹는점은 650℃ 이고, 기상으로 변하는 끓는점은 1090℃ 입니다. 진공챔버내에 진공을 뽑지않고 대기압에서 증착을 하게되면 Mg 시료를 1090℃ 까지 가열해야 하죠. 물론 금속도 위의 H2O 에서 예로 든것처럼 증기압이 있으므로 끓는점 이하에서도 증발이 발생하여 증착 자체는 가능합니다. 진공이나 가열 기술이 부족했던 초기에는 액상상태에서 증발시켜 증착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어지간하면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온도를 급격히 수천℃ 이상으로 올려버리면 중간과정인 액상을 순간적으로 지나며 바로 증발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도를 그렇게 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끓는점 자체가 높은 고융점 물질은 역시 어렵습니다. 도가니를 쓰는 타입이라면 액상이 되어도 도가니 내에 있으므로 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대용량 증착을 해야하는 업체에서는 공중에 필라멘트를 설치하고 필라멘트 자체에 시료를 걸어서 가열증발시키는 방법이 많이 사용되므로 액상으로 변해선 아주 곤란하죠.
여기서 B 의 화살표 부분인 3중점 이하로 압력을 뚝- 떨어트려 봅시다. 그러면 액상을 거친뒤 1090℃ 에서야 기상으로 변했던 Mg 가 이제는 겨우 500℃ 정도만 가열해도 1atm 일때의 액상보다 훨씬 낮은 온도에서, 게다가 액상을 거치지않고 바로 기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시료를 가열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낮출 수 있는 대단히 큰 이점 뿐 아니라 공정시간을 단축시켜 줍니다. 그리고 챔버 자체의 온도가 올라가는걸 막아서 다른 부품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500℃의 낮은 온도에서도 기상으로 변한 Mg 원자는 기판까지 날아가 차가운 기판의 표면에 닿으면서 다시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집니다. 그러면 역시 B 의 점선을 역으로 따라가서 액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고상으로 변하며 박막을 형성하죠. 만약 기판 표면에서 액상으로 변한다고 하면 줄줄 흘러내릴테니 그런일이 일어나면 안됩니다.
그런데 당연히, 진공증착에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공을 뽑는건 아닙니다. 챔버내의 '청정'과 '평균자유행로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우선됩니다. 게다가 시료 가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무작정 압력을 같이 낮추지도 않습니다. 원하는 박막을 입히려면 증발하는 양이 충분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증발량은 온도에 비례합니다. 온도를 너무 낮추면 비록 증발은 되지만 양이 너무 적어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1atm 에서의 녹는점보다 훨씬 더 높은 온도를 가해서 순간적으로 많은 양을 증발시켜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이유 때문에 실험 조건이 정해지는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모두 고려해서 적당한 값을 정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위에 설명한 부분은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일수 있습니다. 증착 자체를 위해 진공을 만들수 밖에 없는 여러 이유가 있고, 비록 의도하지 않았어도 진공을 만듬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서로 이렇게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비록 상태도를 가지고 설명하는데 있어서 닫힌계와 열린계를 왔다갔다 하는 부분이 있지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므로 적용에는 무리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거 처럼 보이는 이 글을 쓴 이유는, 지난번에 열역학은 어느 부분이든 모두 연결되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기에 열역학과 별 관계가 없는 장비 문제로, 어쩌면 그저 기계적 작동부분으로 여길 수도 있고,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신경안쓰고 놓치고 쉬운, 별 의미없어 보이는 그런 곳에서도 열역학적 관계를 끄집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현상들을 더욱 이해하기 쉬워지고 재미있어 지기 때문입니다.
호..혹시 나만 재미있나... ;ㅁ;
...by 개날연..
찬바람 부니까 이제 좀 살만하군요.. ;ㅁ;
언제나 외쳐대는 맑은 물 흐르는 냇가!! 냇가!!!
맨날 말만하고 대체 언제쯤 찾아갈려나요.. ㅠㅠ
글 : 개날라리연구원
그림 : 개날라리연구원
업로드 : 개날라리연구원
발행한곳 : 개날라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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