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속의 모습
앞에서 진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고 했었지만 사실상 우리는 그런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것은 어떠한 물질도 존재하면 안된다. 만약 어느것이든 물질이 존재한다면, 그 물질이 갖고있는 질량이 있다는 것이며 결국 아인쉬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제시한 상대성이론인 질량과 에너지 등가법칙인 E=mc2에 의해 에너지가 존재하게 된다는 뜻이다. 에너지적 관점에서 완전한 진공은 에너지가 0 인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이런 상태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완전하고 이상적인 진공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밀폐된 상자안에 있는 공기와 수분을 가능한 많이 제거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진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런 '현실적인 진공'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숨쉬고 있는 대기의 성분은 약 78%의 질소와 21%의 산소가 주를 이루고, 나머지 1% 정도는 아르곤,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들 대기를 주로 이루고 있는 질소와 산소분자들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혹은 그걸 계산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본 적은 있을까? 지구 대기 전체의 질소나 산소분자의 수를 정확히 계산하기엔 곤란하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일정한 크기의 밀폐된 공간이라면 충분히 계산이 가능하다. 중-고등학교에서 화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매우 간단한 법칙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화학자였던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 1776~1856)는 '기체의 종류에 상관없이 온도와 압력이 같다면 일정 부피내에 존재하는 기체분자의 수는 같다' 라는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만들어 냈으며, 이것을 물질 1몰(mole)당 들어있는 원자(혹은 분자)의 수라 해서 '아보가드로의 수'라고 부르고 있다.
인터넷만 검색해도 바로 튀어나오는
아보가드로 본좌의 원자를 노리는 매의 눈 -_ -
오스트리아 출신의 과학자 로슈미트(Joseph Loschmidt, 1821-1895)는 이 '물질 1몰당 포함된 분자의 수'를 처음으로 측정하였다. 이 때문에 한때 아보가드로의 수를 로슈미트의 수라고 부른 적도 있으나 지금은 아보가드로의 수로 통일하여 쓰고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물리 화학자인 패랭(Jean Baptiste Perrin, 1870~1942)은 아보가드로의 수를 측정하여 1몰당 원자의 수가 6.02×1023개임을 밝혔다. 사실상 패랭이 처음 계산한 아보가드로의 수는 6.02×1023개/mol 보다 높은 값이었으나, 그 후 지속된 연구에 의해 수정되면서 현재의 값이 정해졌다. 아보가드로의 법칙에 따르면, 어떠한 기체든 0℃, 1기압에서 22.4리터의 부피 내에는 6.02×1023개의 기체원자(혹은 분자)가 존재하게 된다. 이 6.02×1023개라는 수치는 너무도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감이 안올 수 있다. 그렇다면, 1기압 상태를 우리가 가진 고성능의 진공펌프를 사용해서 처음에 6×1023개 였던 분자들의 갯수를 자그만치 100조분의 1의 적은 수로 줄였다고 해보자. 그래도 그 안에는 약 60억개나 되는 많은 기체분자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진공이라 말하려면 압력이 0 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실험실에서 현실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수준의 진공은 대략 1×10-10torr 정도 밖엔 되지 않는다. 대기압이 760torr 란걸 생각한다면 이 수준의 진공은 대기압보다 무려 7.6×1012배나 낮은 압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2.4리터의 부피 내에는 8×1010개, 즉 8백억개 정도의 엄청난 수의 기체분자가 존재한다. 인간이 진공의 모습에 접근 하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by 개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