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나만 보면 야옹야옹 하며 쫒아오던 길고양이가 한마리 있었어. 누룽이라 불리던 녀석이야.
지난 봄 어느날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 누가 이사가면서 그냥 버리고 간 고양이라고 했어. 쓰레기통 근처에 살아서 밤에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알게되고 친해진 녀석이었는데, 한밤중에 나를 못보는 구석에 숨어 있다가도 어쩌다 내 발소리나 내 목소리를 들으면 귀신같이 나인줄 알고 뛰어나오던 녀석이었지. 내가 갔는데도 녀석이 안보이는 날엔 내가 '야옹-' 소리를 내면 어디선가 우다다다- 하며 뛰어나왔어. 그리곤 내 발에 치일정도로 내 옆에 붙어서 따라왔어. 내 발에 몸을 비비고, 발 아래서 배를 보이며 누워서 뒹굴뒹굴 하며 나를 쳐다보곤 했지. 내가 엘레베이터를 타면 현관앞에 앉아서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는걸 쳐다보고 있었고, 그리곤 내가 또 나올때까지 현관옆 난간위에 올라가 앉아 기다렸어. 부엌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면 그놈이 난간위에서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거든. 보통 30분 정도는 그렇게 기다렸어. 안돼보여서 간식거리 하나 갖고 나가면 이제왔냥 야옹- 하며 따라와서 간식을 먹고 좋다고 웃어댔지. 아침에 나올때, 밤에 들어갈때. 거의 매일 갑자기 차 아래에서 튀어나오며 야옹~ 해서 놀래키곤 했어. 그래서 주차장을 지날때면 오늘은 어디서 튀어나올려나 차 아래를 살피보며 긴장하곤 그랬어.
문제는. 이놈은 나를 보면 앞뒤없이 따라온다는거야. 내가 멀리 어딜 가야해도 아파트를 벗어나면서 까지 졸졸 따라와. 옆을 안보고 내 다리만 보고. 무언가 먹을걸 주지 않으면 끝까지 따라오거든. 먹을걸 하나 던져주고 그걸 먹는 틈에 내가 사라져야 하는거였지. 그래서 비상용 고양이 간식을 한두개 차에도 넣고 다녔어. 참 요긴하게 쓰였지.
사람들을 보면 친근성이 좋고 귀염떨줄 알아서, 아파트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좋아했어. 굶지않게 특정 장소에 사료도 줬고. 중간에 없어지긴 했지만 비바람 피할 집도 만들어 줬었고. 아이들은 안고 쓰다듬고 놀아주고. 한번은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도 놓아주고 그랬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냥 보고있었지 해꼬지는 안했어. 그렇게 착하고, 귀염성 있고, 생긴것도 이쁜 놈이었어.
과거형이야. 조금 아까까지 그랬으니까.
오늘 집으로 돌아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쪽으로 걸어가는데 이놈이 근처 차 아래에 숨어 있었나봐. 그리곤 내 발소리든 내 목소리든 나인걸 알아봤나봐. 내 몇 m 앞 차 아래에서 갑자기 뭔가 누런게 튀어나오더라고. '누룽인가?' 라고 느끼는 순간. 바로 그 순간 하얀색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나와 고양이 사이를 휙- 하고 지나갔고, 뭔가 둔탁한 소리와 동시에 그 누런 물체가 자기가 튀어나왔던 차 아래로 다시 들어가는것이 보였어.
너무 놀래서 몇십초 가만 서있던거 같아. 뭐야 어떡해. 쭈그리고 앉아 차아래를 보니 누룽이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있었어. 다행이다. 깔리진 않았구나. 자세히 보려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플래쉬를 켜고 차아래를 비춰보니 이녀석이 없더라고. 그새 어디로 갔나. 바로 움직일수 있으니 그럼 별로 다치진 않았겠구나 하며 안도했지. 그런데 녀석은 멀리는 못가고 그 옆의 차 앞쪽에 가서 엎드려 있었어. 그리고 날보고 야옹~ 하던 그런 반가운 울음이 아니라, 정말로 아픈 울음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어. 서럽다는 듯이.
하지만 겉보기엔 모두 멀쩡했어. 어디 피흘린데도 없고. 바퀴에 깔린거 같지도 않고. 그랬으면 흔한 길고양이 사체처럼 바로 그자리에서 크게 다쳤겠지. 그래서 그냥 타박상 정도겠거니 생각했어. 아프겠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곧 나을수 있겠지.
집에 들어와서 녀석이 쫓아오면 주려고 샀던 닭고기 간식을 한웅큼 주머니에 넣고, 녀석이 엎드려 있던 곳으로 갔지. 녀석이 좋아할거야.
.......
녀석은, 아까랑은 좀 다른 모습으로 있더라. 옆으로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고개는 하늘을 향했고. 눈을 감고. 누룽아 하고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고. 난 혹시나 해서 플래쉬로 녀석의 배를 비췄어. 그리고 한참을 지켜봤지. 그러나 녀석의 배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네...
............
집 현관. 신발장 옆의 박스. 지난달 사다놓은 아직 한가득인 녀석의 간식.
아끼지 말고 많이 줄걸 그랬지...
...by 개날연..
그리고 오늘 아침. 경비아저씨 둘이서 화단에 묻어주더라.
고맙더라. 잘 묻어줘서..
이제 주차장 지날때 신경안써도 되겠네.
겨울은 어찌 지낼까 걱정안해도 되겠네.
글 : 개날라리연구원
그림 : 개날라리연구원
업로드 : 개날라리연구원
발행한곳 : 개날라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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