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 초가을...
우연히 차를 몰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들른 어느 작은 마을 어귀에서...
참으로 정겨움이 느껴지는 풍경을 하나 만났다.
지평선까지 아련하게 뻗은 기차길과...
그 끝에서 만나는 길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한동안 그 풍경을 잊지않고 꼭꼭 머리속에 담느라 애를 썼었다...
이런곳이... 집하고 멀지 않은 이리 가까운곳에 숨어있었다니...
언젠가.. 이곳에 다시 와서 사진에 담아가리라...
그 뒤로 가끔 일이 힘들고 지칠때나...
이런 저런 스트레스에 마음이 피로해져 있을때면 그 곳을 떠올렸다.
그곳에 가봐야지... 가봐야지...
그렇게... 생각만으로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04년 11월..
지난주.. 실험실에서 이것저것 실험기기를 다루다가
잠시 커피한잔에 피로를 녹이고 있을즈음...
문득 그곳 생각이 떠올랐다.
가야해...
언제든 찍을 수 있도록 준비해둔 카메라와 필름 몇통을 꺼내들고 차를 몰았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
가을걷이는 어느새 다 끝나고...
플라타너스도 이미 겨울준비를 하고있는 그때 그 자리...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시질 않았지만...
더 늦지 않은것을 감사하며 필름에 내가 보는 풍경을 담고자 했다.
그렇게 찍은 수십여장의 사진중에 마음에 드는 오직 한장...
6년을 기다려 얻은 한장의 사진..
앙상한 가지들이 보이는... 쓸쓸해져가는 장면 하나...
지금은 이렇지만...
내년에는....
좀더 밝은 사진을 담을 수 있을거야...
2006년 7월..
텅 빈 연구실 건물에 혼자 나와 있다가
멍 하니 허공에 초점을 맞췄다...
비가 추적추적 나리다, 해가 뜨다 하던 변덕 심한 날씨...
오후의 무료한 시간이 그렇게 지나며...
무심코 창밖을 내다 보다 문득 떠오른게 있어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뽑아들고 무작정 나섰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곳...
지평선까지 아련하게 뻗은 기차길과...
그 끝에서 만나는 길에 늘어선 플라타너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썩어가는 선로의 침목과
묵묵히 깔린 자갈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그때 그대로 거기 있었다..
이곳을 알게된지 벌써 8년....
알지..? 난... 변하지 않았어..
늘 이곳을 기억하고, 찾아온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어...
오늘의 먹구름과 바람과...
오늘의 비를 기억하며...
그때 그날도 그랬듯이...
애써 삼켜야만 했던 눈물 자욱을 또 남기고 간다.
훗날... 내가 다시 찾아올땐
억지 웃음이라도 한조각 남길 수 있기를...
2009년 5월..
또다시 본능에 이끌려 찾아왔다.
여전히 그대로인 곳.
그러나 지금 이 길은 다른곳으로 길이 새로 뚫렸기 때문에
작년부터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때문에 선로는 기차와 만나지 못해 삐진듯 붉게 녹이 슬어있다.
하지만 덕분에.. 철길 한가운데를 따라 수백m 를 혼자 걸어보았다.
5월.
비가 온뒤에 논은 물을 가득 머금고, 또 어떤 곳은 모내기를 막 끝냈다.
난, 모내기를 끝내고 조금 지난 상태의 논을 좋아하는데..
모의 녹색과, 물빛, 그리고 거기에 비치는 하늘이 잘 어우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논의 상태가 되려면 아직은 이른듯 하다.
그러고 보니..
의도한게 아닌데 봄, 여름, 가을을 하나씩 찍었다.
다음번에 올땐, 눈이 내려주면 좋으련만..
2009년 가을..
그리고 또 5개월.
내내 가을 들판이 없었던 것이 아쉬웠더랬습니다.
사실.. 색만으로 가장 이쁘다고 생각하는 색을 내는 논은 추수를 하기 한달전쯤 인데..
벼의 색은 막 익어가며 연그린을 띄고,
논두렁은 여전히 푸른 녹색이라 그 사이를 뚜렷하게 가로지르는..
그때의 색을 가장 이뻐라 합니다..
그렇게 벼가 익어가며 억셈을 떨구고 부드러움을 더해 담요를 덮은듯한 포근한 느낌마저 만들어 내죠..
하늘과 바람과 물과 흙이 만들어 주는 것.
사람은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는것.
그저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그런 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2009년 겨울..
마지막 한장. 겨울의 한장.
연인들의 눈이 오길 바라는 마음과는 또 다른 바램.
얼마나 눈을 기다렸는지..
눈이 너무 쌓여 차로 갈수가 없었기 때문에 눈이 그치기를 기다려 달려간 곳 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생각만큼 눈이 쌓이질 않은건지..
눈이 그친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녹은건지..
원하는 만큼의 풍성한 눈을 보진 못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릴 땐 저 먼속의 경치가 보이질 않아 못찍었을거라고 스스로 다독이고는 있습니다만..
눈이 많이 내릴땐, 찾아가기가 어려운 곳이라 더더욱 아쉬운 사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야 숙제 하나 끝냈구나.. 하는.. 그런 후련함을..
올해가 가기전에 하나 떨구고 갈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마음에 담아둔지 11년...
못이뤘던 숙제를 이제야 제출합니다..
...by 개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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