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정동진'을 처음찾은건 1989년 1월의 겨울이었습니다...
현실과 충돌하며 1달동안 가출을 했었던 그해 겨울...
강릉에서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찌그덕 찌그덕...
어느 작은 바닷가 역에 잠시 정차했었지요...
'우와...역 바로옆이 바다네...'
정말로 신기하고, 아름다웠던... 그 잊을수 없는 기억...
그 작은 역이 '정동진' 이었을줄은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송을 타기 전까진 전혀 몰랐었습니다...
그냥 아름다운 시골역으로 기억 한구석에 남아있었을 뿐이었습니다..
1997년 이른 겨울...
겨울바다가 보고싶던 저는 '정동진'을 찾았습니다...
강릉...
자그마한 차를몰고 눈이 펑펑 나리던 대관령을 넘어 찾은 도시...
그리고 7번국도...
강릉에서 7번국도를 타고 3~4km 정도 내려가면...
우리나라 모든 도로중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나다는 '해안절벽도로'가 나타납니다...
단순히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가 아닌...
영화에서나 등장하곤 하는 해안 절벽을 깎아만든 도로..,
매서운 폭풍이 몰아치던 그날...
약 7km에 이르는 이 도로를 달리는 동안 저는...
바다가 보여주는 그 엄청난 장관에 운전대를 놓칠까봐...
내심 조마조마 했었드랬습니다...
그리고 언덕 한구비를 지나 저 멀리 아래쪽에 나타난 아주 자그마한 마을...
바래가는 집 몇채...
정말로 깊은 어촌에서나 볼만한 초라한 구멍가게 하나...
나무로된 미닫이 문이 달려있던 자그마한 찻집 하나...
낡은 지붕들... 비포장으로 흙탕길인 도로...
그리고 드넓게 보이는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놓인...
그들보다 하나 나을것 없었던...
페인트가 벗겨져가던 자그마한 시골역...'정동진'...
역 왼쪽의 드넓은 공터에 차를세우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역 안에는 십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조개탄을 때는 난로주위에서
추위에 얼은 손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난로위에는 커다란 주전자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었죠...
마치...국민학교 교실의 겨울풍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역무원 아저씨들에게 바닷가로 한번만 나갔다 오게 해달라고
사정사정 했습니다...
기차표를 끊지 않고는 들어갈수 없었던...그곳...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 '찌그러진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한번만 찍고 오겠다고 졸랐습니다...
역무원 아저씨는 안된다고 그럴수 없다고 버텼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5분만 나갔다 오라고 문을 열어주었죠...
사람들은...그 추운...폭풍이 몰아치던 겨울날...
그 황량한 바닷가에서 '찌그러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모래사장에 가서 바다내음을 마시며...
여기가 '정동진'이구나...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저 또한 옛날 기차안에서 바라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좋아했습니다...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세상을 구경시켜준 역무원 아저씨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그 아름다운 시골마을을 뒤로한채...
언젠가는 다시 꼭 와야지...하며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2000년 2월 늦은겨울...
겨울바다가 보고싶던 저는 또다시 '정동진'을 찾았습니다...
강릉...
자그마한 차를 몰고 날씨가 맑아 바다가 보이는 대관령을 넘어 찾은 도시...
그리고 7번국도...
바람이 잔잔했던 탓에 파도가 많이 치질않아...
해안절벽도로의 경치는 많이 수그러 있었습니다...
가는길 곳곳의 절벽을 더 깍아내어 만들어 놓은 주차장들...
그 주차장에는 큰 식당버스가 우동, 오뎅, 라면등을 팔고있었습니다...
가는 길 길목 길목에서는 횟집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언덕 한구비를 지나 저 멀리 아래쪽에 나타난 거대한 지방도시...
높다란 빌딩들...수많은 벽돌집...건물들...
서울에서나 볼수 있을법한 번쩍이는 음식점의 간판들과 색색으로 무장한 카페...
사방에 발 디딜틈없이 가득 들어차 있는 기념품가게들...
그리고 불과 2년만에 그 건물들 틈에 끼어...
어느것이 역인지 찾을수 없게 되어버린...
돈을 발라놓은 현대스런 모습의 중소도시역... '정동진'...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역 왼쪽의 공터에 주차비 1000원을 내고 차를 세웠습니다.
새롭게 단장하여 너무도 깨끗하게 변신해버린 정동진역...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역 내에도 수십명의 사람들로 인해 떠드는 소리가 귀를 찢었습니다...
단지 300원을 내고 입장권을 받으면 누구든지 해변가로 나가
'모래시계 소나무'라 이름붙여진 소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역 저편의 산 꼭대기에는 조각공원을 만들어...
흉물스럽게 커다란 범선모양의 카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호기심에 그 범선모양의 카페에 한번 가보리라 했습니다...
가는 길 곳곳...경치좋은 곳에 세워진 여관...모텔들...
심지어 산 꼭대기 조각공원 바로옆에도 모텔이 있더군요...
범선카페에 가기 위해선 입장료 '2000'원을 내야 합니다.
커피마시기 위해 커피값이 아닌 입장료를 내야한다니...
카페내의 의자시트는 빨지않아서 정말 더러웠습니다...
테이블에 앉아있어도 아무도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길래...
그냥 나와버렸지요...
범선카페 위에서 내려다본 정동진은...
그야말로...'관광도시'나 '유흥가' 같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모래시계를 세워놓은곳...
정말로 이뻤던...아담한 소나무숲이었는데...
그 소나무를 모두 뽑아내버리고... 웃기지도 않은 모래시계 하나 덩그라니...
조각공원 위쪽 해안가에는 '일출'을 보는 장소가 있습니다...
길을 따라 올라올라 갔더니...
산을 파헤쳐 공터를 만들어 놓고...
손모양의 커다란 장식물을 세워놨습니다...
그리고...그 앞에...일출을 보는 장소라 해놓고...
일출을 잘 보기위해 벼랑에서 자라고 있는 그 많은 소나무들의 밑둥을
잔인하게도 썽둥썽둥 잘라놓았습니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는 숲과 잘려진 소나무의 단면을 쳐다보면서...
난...울고싶었고... 이런 사람들이 정말 싫었습니다...
또 하나의 상상치도 못한 세상을 보여준 이나라의 관계자들에게
수많은 실망과 원망을 남기고....안타깝고 씁쓸해진 기분으로...
그 생각하기도 싫은... 퇴폐해버린 환락가를 뒤로한채...
이제 다시는 이곳에 오지않으리라...하며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다시는...
가보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쯤 사람들은 알수있을까요...
잃어버린것을 다시 찾는것이...
새로운것을 만드는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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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4년이나 흘렀나..
2000년 여름, 천리안 유머란에 올렸었던 글.
그 이후로 정동진을 찾은적은 역시 없다.
누군가 가자고 해도 거부했다.
간혹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내가 보았던 그 끔직한 모습보다 덜할리 없다.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을 정동진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정동진은 단지 그 바닷가 가까운 역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 눈비를 맞으며 서있는 찌그러진 소나무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때묻지 않아 주변에 구르던 돌맹이 하나까지 모두 아름다웠던 그곳,
사람냄새 풍기던 간이역이 있던, 그 마을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동진은
우리나라 어딜가나 똑같이 볼수있는 관광지의 모습일 뿐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장소를 멀리서 바라볼수 있는곳에 건물을 만들지 않고
바로 그곳 위에 건물을 만들었다.
그 순간
최소한의 인간의 숨결만을 허용한 사람냄새와
자연이 부여한 아름다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인간의 탐욕만이 그 자리에 남는다.
글 : 개날라리연구원
그림 : 개날라리연구원
업로드 : 개날라리연구원
발행한곳 : 개날라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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